안녕하세요. 수도권 소재 대학원에서 조교 겸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20대 후반 여성입니다. 지금 손이 바들바들 떨려서 집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와 학교 정문 앞 카페 구석자리에 숨어 이 글을 씁니다. 오늘 밤 8시, 퇴근길에 평생 잊지 못할 일을 당했어요.
제 수업을 듣는 이**라는 남학생이 있는데 학기 초부터 선을 넘나드는 쪽지와 메일을 꾸준히 보내오던 애였습니다. ‘오늘 교수님 옷 너무 우아하세요’, ‘조교님 목소리 들으면 힐링돼요’ 같은 강의와 상관없는 말들이요. 저는 교수자 체면 차린다고 단호하게 끊지 못하고 ‘감사합니다, 수업에 집중해주세요’ 하고 웃으며 넘겼어요. 지금 생각하면 그때 확실히 선을 그었어야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던 것 같습니다.
오늘 기말 성적이 공지되면서 일이 터졌습니다. 그 학생은 출석도 들쭉날쭉했고 과제도 완성도가 현저히 낮아서 기준대로 채점하니 C+가 나왔습니다. 본인 기대와는 많이 달랐겠죠. 저녁 8시쯤 4층 연구실 불 끄고 짐 챙겨 나오는데 복도 끝에서부터 저를 빤히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지더라고요. 애써 모른 척하고 계단으로 내려와 정문 쪽 지하철 연결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.
그런데 지하철 2번 출구 앞 기둥 뒤 어두운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‘선생님!’ 하고 고함을 지르더니 제 앞을 떡하니 가로막았습니다. 평소 능글맞던 웃음기는 사라지고 눈은 핏발이 선 채 제 가방 끈을 낚아채듯 움켜쥐고 ‘나랑 카톡할 땐 분위기 좋았잖아요! 왜 점수를 이렇게 줘요?’라며 소리를 지르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봐서 너무 수치스럽고 다리가 풀렸습니다. 제가 뒷걸음질 치자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밀고 ‘장학금 날리면 가만 안 둔다, 어디 사는지 모를 줄 알아?’라며 낮고 끈적한 목소리로 협박하더군요.
마침 근처를 지나던 남학생 두 분이 무슨 일이냐며 뛰어와주신 덕에 그 틈을 타 가방을 낚아채듯 빼고 도망쳐 나왔습니다. 지금도 등 뒤에 그 학생이 서 있는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집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납니다. 성적이라는 공적인 기준을 왜 사적인 감정과 힘으로 짓누르려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. 다시 강단에 서는 게 무섭습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