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늘 교직에 대한 회의감을 넘어 손끝까지 떨리는 일을 겪고 하소연할 곳이 없어 글 올립니다.
저희 반에 집이 꽤 잘 살고 성적도 상위권인 남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. 등교할 때마다 로고 박힌 고가 패딩에 신발까지 풀세팅으로 오니 눈에 띌 수밖에 없는데, 인사성은 바른 편이라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.
그런데 오늘 6교시 끝나고 교무실로 상담하러 오겠다고 하더군요. 마침 다른 선생님들은 다 퇴근하고 복도 불까지 꺼진 6시 반쯤, 제 책상만 스탠드 켜진 채 남아 있었는데 애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가방에서 노란색 두툼한 봉투를 꺼내 제 키보드 옆으로 쓱 밀어 넣었습니다.
너무 놀라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애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헤헤 웃으며 말하더군요. “선생님, 이번 학기 세특만 잘 써주시면 돼요. 아버지가 선생님 수고 많으시다고 꼭 전해드리래요.”
순간 머리가 하얘졌습니다. 봉투는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두께랑 묵직한 느낌으로 봐선 족히 몇백은 들어 보여서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리로 꽂혔습니다. 정신 차리고 “너 지금 무슨 짓이냐, 당장 가져가!” 하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.
그러자 애 표정이 순식간에 굳더니 더 어이없는 말을 내뱉더군요. “선생님, 요즘 세상에 원칙만 고집하면 피곤하잖아요. 서로 좋게 가면 안 될까요? 생기부 쓰는 건 결국 선생님 마음대로잖아요.”
고등학생 입에서 그런 말이 태연하게 나오는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. 돈이면 다 된다고 배운 건지, 아니면 교사라는 사람을 그냥 자기 집 직원쯤으로 보는 건지 헛웃음만 나왔습니다.
결국 봉투를 거의 던지듯 돌려주고 애를 내보냈는데, 퇴근해서 정문 지나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핑 돌더군요. 이렇게 대우받으려고 그 긴 임용고시 미친 듯이 버텼나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.
이건 학교에 정식으로 보고해야겠죠? 그런데 애 아버지가 이 동네에서 꽤 알려진 분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괜히 찍혀서 불이익 당할까 봐 겁도 납니다. 선생님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셨나요?