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키보드가 두 개로 보여요. 고등학교 때부터 딱 10년,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고 믿었던 애가 B예요. 서로 원룸 현관 비번까지 공유하고 택배도 대신 받아줄 정도로 벽 하나 없는 사이였죠.
터진 건 며칠 전 점심시간이었어요. 회사 회계팀 자리에서 결산 맞추고 있는데 B한테 연락이 왔어요. 자기 집이 갑자기 수도 공사 들어가는 바람에 샤워를 못 했다고, 제 집에서만 씻고 바로 출근하면 안 되냐는 거예요. 워낙 제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애라 1초도 의심 안 하고 비번 다시 찍어줬죠.
그리고 저녁 7시쯤 퇴근해서 현관문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싸했어요. 원래 거실 벽면 장식장 유리 선반 위에 나란히 세워둔 제 클래식백 두 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먼지만 뽀얗게 남아 있는 거예요. 가방만 쏙 빠지고 텅 빈 더스트백 두 장만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더군요. 심장이 쿵 내려앉아서 옷장이며 침대 밑까지 다 뒤졌는데 흔적도 없었어요.
바로 B한테 전화 걸었죠. 처음엔 태연하게 어 나 씻고 바로 나왔는데? 뭔 소리야? 하며 발뺌하더라고요. 그래서 제가 현관 CCTV 돌려보겠다고 하자마자 돌변했어요. 야 너 진짜 그까짓 가방 두 개 때문에 날 도둑으로 몰아? 10년 우정을 그렇게 쉽게 쓰레기통에 버리냐며 오히려 제가 속 좁은 사람인 것처럼 몰아세우더군요.
더 기가 막힌 건 고등학교 때 제가 실수로 걔 가방에 흠집 냈던 일을 꺼내더라는 거예요. 자기는 그거 10년 동안 꾹 참고 살았다나. 미쳤죠. 그때 제가 바로 사과하고 수선비까지 다 물어줬는데, 이제 와서 그걸 자기 절도의 면죄부처럼 내미는 꼴이 소름이 끼치더라고요.
그날 밤 더 확실한 걸 봤어요. B 부계정 인스타에 제가 잃어버린 그 가방을 어깨에 메고 드디어 큰맘 먹고 장만한 내 생애 첫 드림백이라며 하트 잔뜩 붙여서 자랑하고 있더라고요. 버클 옆에 제가 매일 보던 그 미세한 스크래치까지 똑같아요. 10년 우정이 가방 두 개 값에 팔려나갔다는 게 아직도 안 믿기는데, 전 바로 증거 캡처해서 경찰서에 고소장 접수하고 왔습니다.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네요.